조용한 약속: 난니 모레티 [조용한 혼돈] Caos Calmo

말로만 듣던 거장 감독 난니 모레티 Nanni Moretti의 영화를 접했습니다.
이미 책으로 출판되어 유럽에서 화제가 된 산드로 베로네시의원작을 영화화했습니다.
여기서 난니 모레티는 메가폰이 아니라 Laura Paolucci와 Franceso Piccolo와 함께 대본 작업에 참여했고,
감독은 안토넬로 그리말디(Antonio Grimaldi)가 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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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혼돈
Quiet Choas
2008
이탈리아 영국

감독_안토니오 루이지 그리말디
배우_난니 모레티, 발레리아 골리노

이별의 방법

이 영화는 여러모로 얼마 전 본 콜린 퍼스 주연의 <제노바>를 닮았습니다. 그러나 같으면서도 다른 이별과 가족의 사랑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건 이별을 극복하는 방식입니다.

주인공 피에트로와 (마이클 윈터바텀의 영화) <제노바>의 주인공 조는 어느날 갑자기 아내(교통사고)를 잃습니다. 조의 경우는 나름대로 아픔을 잘 견뎌내며 아직은 감정이 여린 두 딸을 걱정돼 아내와 살던 곳을 떠나 새로운 곳에서 삶을 시작합니다. 막내 딸의 죄의식과 첫째 딸의 방황을 극복하기 과감히 새로운 삶에 뛰어듭니다.
묵묵히 두 딸을 보다듬는 그는 성실한 아버지의 모습으로 딸에게 다가갑니다.

그런데 <조용한 혼돈>의 피에트로는 좀 다릅니다. 차분하고 의연한 것 같지만 그 속에 큰 혼란이 내재돼 있습니다.
움직일 수 없는 혼란 말이죠.

그는 아내가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에 동생과 해변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아내가 심장마비로  죽음을 맞을 그 순간 그는 뜻하지 않게 물에 빠진 여자를 구해줍니다. 알 수 없는 우연 속에서 최선을 다했건만 곧 그것은 가족에게 상처가 됩니다 아무도 큰 소리로 비난하지 않지만 내면에 침잠합니다.  사랑하는 사람 곁에 있지 않고 다른 곳에 있던 자신의 모습을 내면에 남깁니다.


움직일 수 없는 혼란

그에게는 똑똑한 딸 클라우디아가 있습니다.
장례식이 끝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 때, 피에트로는 딸을 학교에 보내주며 약속을 합니다.
곁에 있겠다고, 학교 앞에서 기다리겠다고 말이죠.

딸은 어떻게 받아들였을 지 모르지만 그 자신은 어느 순간부터 학교 앞 벤치에 머무르며 그렇게 약속을 이행합니다.
회사에 양해까지 구하며 학교 앞 벤치에서 하루하루를 보냅니다. 기약도 할 수 없습니다.

그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흔들렸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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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 길을 걸어가다가 우연히 신호등 앞에서 한 남자를 보았습니다. 그는 신호가 바뀌어도 길을 건너지 않고 있었습니다. 길을 잘못 든 것이 아니건만 그는 신호가 여러번 바뀌어도 멍한 시선을 한 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테오 앙겔로풀로스의 <영원과 하루>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고향인 알바니아로 꼬마 아이를 보내고 혼자 남겨진  주인공은 어디로 갈 지를 모릅니다. 밤에 차를 운전하다 신호가 걸려 멈추었는데, 그 차는 다음에 신호가 바뀌어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시간은 흘러 다음날 새벽이 되서야 그의 차는 출발합니다.

살다가 문득 어디로 가야할 지 모를 때가 있습니다.

피에트로는 갈 곳이 어디인지 몰랐습니다. 자신의 죄를 쉽게 용서할 수 없었기에, 지금 이순간 그가 갈 수 있는 곳은 사랑하는 딸이 있는 학교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 벤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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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치에 머문 일상 곁으로 사람들이 지나갑니다. 시간들이 흘러갑니다. 풍경들이,  계절이 흘러갑니다.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은 결코  볼 수 없는 삶의 결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가 자신에게 걸었던 마법
그 마법을 푸는 열쇠는 딸 클라우디아에게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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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l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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