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로 떠나는 음악여행: 하림과 두번째 달

여름 축제가 막을 내리고 이제는 좀 여유를 가져볼까 했더니 더 다양한 가을 축제들이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저는 아일랜드 음악 여행 제안할까 합니다. 헤드뱅의 거친 몸부림이 아니라 손장단 발장단에 차가운 맥주 한 잔을 즐길 수 있는 훈훈한 여행 말이죠. 굳이 비행기를 타지 않아도 좋습니다. 아일랜드로 여행을 안내해 줄 음악가들이 있으니까요. 하림과 에스닉 퓨전 밴드 두번째 달입니다.


국내 아티스트 중에서 아일랜드란 단어를 연관시키면 저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렵지 않게 하림과 두번째 달을 떠올리지 않을까 합니다. 문화는 물론, 음악의 다양성과 개성마저 부족한 현실이라 이들 존재는 누구보다 이채롭고 선명하게 다가옵니다.

처음은 언제나 사랑입니다. 그들, 하림과 두번째 달은 먼저 아일랜드와 사랑에 빠졌고, 그로 인해 삶이 변했습니다. 된장과 김치로 다져진 토종 한국인이지만 아일랜드 음악의 민속적 선율을 연구하고 이제는 그들만의 감성으로 노래합니다.

가수 하림하면 먼저 아일랜드 휘슬이 떠오릅니다. 못 다루는 악기가 없는 전천후 연주자이지만, 그 중에서도 아일랜드 휘슬은 마치 그의 상징처럼 떠오릅니다. 여기에 그의 음악적 감수성을 더하면 그는 아일랜드 휘슬을 부는 고독한 남자입니다.

하림과 관련해 제가 만든 법칙 세 가지가 있습니다. 일명 ‘하림을 만나는 법!’ 첫째, 음악 속에 아일랜드를 찾을 때, 둘째, 서러운 사랑이 끝나고 머리에서 아코디언이 울릴 때(가슴에서 소년의 서러운 피리 소리 울릴 때), 마지막으로 홍대 이리 카페 혹은 홍대 물고기 카페에서 당신이 있는 어느 날! 단, 운이 좋아야 한다.

하림은 사랑의 아련한 추억을 노래한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잊혀지네’로 대중에게 알려졌고(저는 ‘초코릿 이야기’와 ‘여기보다 어딘가에’를 아껴 듣습니다), 최근에는 공중파 음악 프로그램과 EBS 여행 프로그램에 모습을 드러내며 대중과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윤종신과 박정현의 앨범에 다수의 곡을 작곡하고, 리쌍과 김장훈 등 다양한 가수들의 공연 및 레코딩 세션, 영화 및 드라마 OST에 참여하고 있는 자유로운 싱어송라이터입니다. 2개의 정규 앨범, 1집 <다중인격자>와 2집 <Whistle In A Maze>를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평판이나 이미지에도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가 흡입한 아일랜드의 자유로운 정신 때문인지 유명세나 음악적 욕심을 추구하기 보다는 더 자유로워지기 위해 떠남을 즐기는 방랑자 같습니다. 작년에 그리스와 아프리카 여행에 이어 올해도 아일랜드로 여행을 떠났던 그입니다.


이제는 두번째 달입니다. 최근에 눈에 쏘옥 들어오는 앨범이 있어 주저하지 않고 집어 들었지요. 바로 두번째 달의 앨리스 프로젝트(Alice in Neverland)의 ‘Festa in Neverland’ 가 발매되었습니다. 두 번째 달의 멤버 중 4명(박진우, 최진경, 백선열, 조윤정)이 만든 프로젝트 앨범이라 합니다. 작은 축제를 연상시키는 일러스트에 음악도 뽀송뽀송 합니다.

하림이 남자의 고독과 아련한 사랑으로 다가온다면, 두번째 달은 다채로운 색채로 물든 민속적인 정서를 전해줍니다. 발매된 앨범을 듣다보니 ‘앨리스’라는 이름이 그냥 만들어진 게 아닌 게 아닙니다. 십대 소녀의 설레임과 순수한 감성이 두번째 달의 음악 안에 드리워져 있습니다. 음악으로 동화를 지어낸 듯합니다. 아일랜드 선율에 맞춰 탭댄스를 추고 싶다면 두번째 달을 강력 추천하고 싶네요. 그렇다고 꼭 아일랜드 음악만을 고집하는 건 아닙니다. 남미의 탱고든, 브라질의 삼바든, 재즈든, 세련된 어쿠스틱 사운드든, 포크든 경계를 구분 짓지 않고, 스폰지처럼 흡수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 시작점은 엄연히 아일랜드입니다.

무턱대고 아일랜드를 추앙한다고 볼 수 있을지 몰라 한 말씀 드리면 그들은 그 가운데서 끊임없이 우리의 정체성에 대해 묻습니다. 그 고민이 그들을 단순한 추앙이나 따라하기가 아니라 별빛을 받은 조약돌처럼 빛나게 만듭니다. 아일랜드 문화 속에서 우리만의 숨결과 가능성을 찾습니다. 아일랜드에서는 어디를 가도 팝이나 클래식처럼 민속 음악들을 접할 수 있다 합니다. 축제에서는 청중들이 악기를 들고 나와 실력에 상관없이 어울려 연주하는 게 더 자연스런 문화입니다. 음악이 삶의 일부인 사람들.

하림과 두번째 달이 꿈꾸는 것도 바로 이렇게 음악으로 행복해지는, 음악으로 통하는, 음악으로 전통을 계승해 가는 (공연무대나 텔레비전이 아니라) 문화가 아닐까 합니다. 길거리 연주를 아일랜드에서는 버스킹(busking)이라 칭합니다. 하림과 두번째 달. 이제 그들 이름을 언급하면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오늘도 어디에선가 무명의 가수처럼 버스킹을 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장터에서 만날 수 있었던 소리꾼의 풍경을 꿈꾸며 말입니다.


그날 운이 좋아 홍대의 한 카페에서 하림과 두번째달의 멤버이자 음악 프로듀서 김현보를 만났습니다. 세상의 인연을 믿는 제가 두 사람의 글을 썼던 건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는 확신이 든 순간이었습니다.

posted by Pl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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